내가 제천에 이르렀을 때에는 햇살이 뜨거운 초여름이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햇빛에 일장기가 눈부시게 펄럭이고 있었으며
일본 위병의 총칼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언덕에서 내려와 마을로 들어가 잿더미 위를 걸었다.
나는 이제까지 이토록 심한 참화를 본 적이 결코 없었다.
한 달 전만 해도 사람들이 붐볐고 풍요로웠던 마을이 이제는 검은 잿더미만 남았다.
벽, 기둥, 장독, 그 어느 것도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값나가는 물건을 찾기 위해 잿더미를 뒤적이고 있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제 제천은 지도 위에서 사라졌다.
잿더미를 뒤적거리는 사람들에게 마을 사람들은 어디에 읐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사람들은 지금 저 언덕 위에 누워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메켄지, 대한제국의 비극>
'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간회 도쿄 지회의 강령 (0) | 2020.01.02 |
---|---|
대구 쪽집게 점집 후기 사춘기 말 안듣는 아들 (0) | 2019.12.24 |
한.일의정서 체결(1904.2) (0) | 2019.12.17 |
웨딩촬영전에 급 다이어트로 시작해서 뱃살 쏘옥~ 빼고 유지하는 한달째... (0) | 2019.12.13 |
관민공동회(1898) (0) | 2019.12.10 |